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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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를 떠올려 보자. 수풀 헤치고 강을 건너다 힘들어 쓰러질 때쯤이 되면 마을 하나가 보인다. 초록빛 잔디에 꽃이 만발하고 사람들 모습은 활기차고 행복이 넘친다. 동화에만 있을 것 같은 마을. 상상이나 꿈속에서나 볼수 있을 것 같은 마을....상상을 현실로 만든 곳이 실제로 있다. 바로 위스테이 별내아파트(이하 위스테이)다.
위스테이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세상에는 수 많은 아파트가 있다. 하지만 위스테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의 개념을 집과 접목했기 때문이다. 위스테이에 사는 491세대 모두 임대로 들어왔다. 8년 동안은 본인이 나가지 않는 이상 계속 거주할 수 있다.
출렁거리는 집값에 웃고 울거나 이사 갈 집 알아볼 걱정이 전혀 없다. 별내아파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천지가 아닌듯 싶기도 하다.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손병기 이사장은 어떻게 이런 초개념 아파트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2016년도 후반기에 국토교통부의 ‘협동조합형 뉴스테이 시범 공모사업’이 위스테이로 구현된 것이죠. 건설사가 주도하던 건설시장에 ‘사회적 경제’가 들여와서 대안적 모델을 만들자는 취지였죠.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마을공동체’를 건설해보자고 했으니 처음에는 물론 쉽지 않았죠.”
손 이사장은 "위스테이가 일반 아파트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입주하기 전부터 인간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동조합 아파트는 조합원으로서 함께 모여 교육받고, 소모임을 하면서 얼굴을 익히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집이 다 완공되기 3년 전쯤부터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곳에서 함께 사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은 주민이 참여해서 설계했고요.”
2018년도 6월부터 9개월 동안 참여형 설계로 디자인됐다는 커뮤니티 센터. 조합원이 자주 이용하는 ‘동네카페’를 중심으로 창작소, 어린이 놀이 시설, 동네부엌, 도서관과 체육시설이 있다. 이것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일에 조합원의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마흔 번이 훨씬 넘는 회의를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위스테이의 커뮤니티 공간은 900평 정도입니다. 일반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한 2.5배이죠. 조합원의 소통을 생각해서 함께 하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조합원의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었다. 위스테이에서 가장 멋진 공간인 ‘동네 카페’에서 30대부터 시니어세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조합원과 이야기 나눴다.
“부산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회사 때문에 남양주 쪽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서로 다른 세대, 같은 이상을 품다
40대 김양희 씨 이야기다. 부산을 뒤로하고 경기도로 들어오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집값도 비싸고, 아이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상상하기 싫었다.
“그래도 집은 알아봐야 하니까 웹서핑을 하다가 위스테이를 알았어요. 홈페이지에 5분짜리 영상이 있었어요. 입주하면 어떻게 살아가는지 미래상을 그린 스케치 영상이었어요. 그걸 보고는 ‘나 절대 안 가’에서 ‘자기야, 저기 가자’로 바뀌었어요.(웃음)”
1차는 이미 마감이 된 상태였고, 2차 모집을 한다는 소식에 서울로 한달음에 올라와서 기회를 잡았다. 김 씨는 평생의 뽑기 운을 위스테이 당첨에 다 쏟았다고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홀로 책임지는 육아로 힘들어했다던 김 씨는 위스테이에서 표방하는 대로 삶이 그려지기를 바랐다.
“여기에 와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했어요. 경력단절이 됐지만 언젠가는 일을 해야 하잖아요. 내가 사는 곳에서 나의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이웃 아이들까지 돌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70대 석명현 씨는 아내와 함께 입주했다. 석 씨는 작은 아들이 다녀 준 덕분에 위스테이 조합원이 되었다. 그 역시 동아리 모임은 물론, 6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에도 참여한다. 말 그대로 액티브 시니어이다. 한약업을 하는 석 씨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고. 항상 웃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곳에서는 예전보다 더 웃을 일이 많다. 아이들 때문이다.
“제 낙이 뭔 줄 아세요? 베란다 창문 앞에 서서 운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그네 뛰고 노는 모습을 보는 거예요. 어떻게 노나 보는 게 참 좋더라고요.”
예전 아파트에서 유명인사로 살았지만 모든 사람과 다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옆집 사람을 만나면 눈인사 정도만 하고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별내아파트는 별스러운 공간이다.
“여기 이웃은 아이이고 어른이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해요. 쉽게 말해서 시골에 40~ 50채 되는 읍내 같아요. 나이 들었다고 소외되는 일도 없어요.”
“엄마 나 밖에서 놀게.”
“어 갔다 와.”
아들과 함께 나온 박윤경 씨. 옆에 있던 아들이 친구를 만나서 놀러 나가자 제대로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를 말씀드리자면 이곳에 이사 와서는 어느날 놀다 지쳐서 코피를 터뜨렸어요. 제가 바라는 거였어요(웃음). 아이가 공부하다 쓰러지는 게 아니라 놀다가 지치는 거요. 그리고 자전거나 킥보드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잖아요?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 다 알더라고요.”
7월1일이 입주했다는 박윤경 씨가 위스테이에 와서 이웃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고 산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아들 둘있는 네식구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참 내성적이거든요. 근데 이곳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두 개나 해요. 남편이 이웃과 인사하는 아파트가 처음이에요. 그 부분에서 많이 놀랐어요.”
아이가 사라져서 어디 갔나 찾다 보면 인터폰이 울린다. 아이가 어느 집에 가서 밥 잘 먹고 있다는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동네에 산다는게 요즘 세상에 가능한 일인가 싶다.
남녀노소 불문, 마을공동체가 움직인다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느끼는 점이 있다. 세대에 대한 경계 없이 편하게 앉아서 서슴없이 얘기하고 권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존중하되 경계는 없다. 그리고 조합원의 다재다능함을 찾아내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박윤경 씨는 미싱 동아리에 들어가 미싱을 배운다. 김양희 씨는 ‘백개의학교’ 모임의 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교육과 관련해서 부모끼리 이야기 나누고 공유한다.
“어디 나가지 않고 이 안에서 평생교육학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 동네에 도입하고자 해요. 강사로 활동하는 분도, 배우는 분도 다 조합원입니다. 여기서는 내가 강사인데 다른 강좌에서는 수강생되기도 해요. 교육생 중 최연소자는 8개월 아기예요. ‘북북북’이라는 영유아를 위한 그림동화 감각 활동에 참여해요. 그림책 읽기 수업에는 82세 어르신도 계십니다.”
경로당 말고 60+센터
아파트가 생기면 시니어 복지를 위해서 경로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위스테이에는 경로당이 아닌 60+센터가 들어선다. 60+센터는 단순히 시니어가 여가를 즐기는 곳이 아니라고 손 이사장은 말했다. 60세 정년 퇴임 후에도 워낙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과거에 통용되던 50+는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도록 60+센터 안에 일자리 행복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커뮤니티 센터에서 시니어 여섯 분이 청소 활동을 합니다. 아파트에 배달된 택배를 분리해서 각 가정에 보내는 마을 택배에서는 여덟 분이 일하시고요. 60+ 분들이 아이 돌봄 역할도 해주십니다.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교육도 받으셨어요. 어른으로서 역할을 잘해주고 계십니다. 물론 적정한 인건비를 드리죠. 이렇게 조합 안에서 일자리도 창출합니다.”
60+가 움직이기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세대 차이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이 김양희 씨의 지론이다.
“몇 주 전에 있었던 김장 축제 때도 제대로 어른의 면모를 보여주셨어요. 마을 가꾸는 일에 굉장히 솔선수범하십니다. 가지고 계신 식견들도 아주 높아요. 심유학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동양철학이나 한학 등을 가르치는 어르신들도 계십니다. 시니어분들이 공부도 많이 하시고, 책도 읽고, 마을 활동에 적극적이세요.”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위스테이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발 뻗고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내집이라는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임차인이면서 운영의 주체이고 조합원으로서 30%의 공동지분을 갖고 있다. 임대가 마무리되는 8년 후 목표는 조합이 지분을 100% 다 인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스테이는 주거 문제를 다각도로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주거는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먹거리 문제, 3세, 7세, 초등 아이 돌봄, 여성의 활동 경력단절여성문제, 청년, 60세 이상 시니어 문제까지 그물코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위스테이에 함께 머무른 지 6개월 차. 아직 시도할 것들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인다. 인터뷰 말미에 박윤경 씨가 말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기에 고민도 행복하게 한다”고 말이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만의 위스테이가 아니라 넓혀 가고, 깊어져서 별내도 품고, 남양주시도 품고 우리나라의 '선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별스러운 마을, 별내 아파트가 우리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간다면 대한민국이 좀 더 인정 넘치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권해솜 미디어SR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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