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게 예술이다!
본문
함께 살아가는 게 예술이다!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
산책로에서 바라본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사진 권해솜 기자.
궁금증의 시작은 기노채 한국주택도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과의 인터뷰였다. 마당극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이 살 집을 지어줬다고 했다. 크루즈에 이용하는 선박 자재를 주택에 접목했다고 했다. 은혜공동체를 설계한 건축가 김태영, 김현준의 작품이라니 안 가볼 이유가 없었다. 최고의 조합을 자랑하는 이들이 도대체 누구를 만났기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는지 보고 싶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 물안실로. 굽이치는 산길을 차를 타고 휘휘 올라가면, 지리산 천왕봉 자락이 선명하게 바라보이는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에 이른다.
지역 문화를 이끌어가는 마당극을 만들다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은 1984년에 창단한 마당극 전문예술단체 극단 큰들의 단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여기에는 모두 31채의 집이 있다. 왼쪽에는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는 형형색색의 컨테이너 주택이 10채가 있고, 오른쪽으로 단원들의 집과 카페나 식당으로 활용하는 공동시설이 21채 있다. 단원들이 낳은 어린아이부터 50대까지 40여 명의 다양한 세대가 입주해 살면서 함께 일하고, 돕고 의지하는 공동체 마을이다.
기자를 맞이한 이는 극단 큰들의 전민규(56) 예술감독과 서지은(44) 사무국장. 코로나19가 다시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해 바이러스 감염 예방과 안전을 생각해 다른 단원들과의 만남은 자제하기로 했다.
20분 정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사진 권해솜 기자.
새삼 극단 큰들이 창단 37주년 된 중견 극단이라는 점에 놀랐다.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공동체까지 만들어 산다는 것만으로도 저력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전 감독과 서 국장은 대학교 사물놀이 동아리에 들어갔다가 공연계로 빠져든 사람들이다.
전민규 대학교 졸업하고 32년 동안 이 일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문화예술단체가 사회의 불평등이나 민주화, 농촌, 여성, 분단, 통일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탈춤이나 마당극으로 사회분위기를 표현해 무대에 올렸지요. '연극 작품을 만들고 예술을 했다'는 성취감에 젖는 일은 적었습니다.
큰들이라는 조직을 이루는 첫 번째 순위는 바로 '사람'이라고 했다. 목적과 성과를 함께 이루고자 하는 사람의 관계와 소통, 삶, 행복 이런 것이 초기부터 중심이 됐다. 모두 좋은 관계가 되면 뭘 만들어도 잘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전민규 보통 예술집단은 '좋은 작품'을 추구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그것은 두 번째 순위입니다.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말이죠. 예술에 접근하는 경로가 기존 예술 집단과는 다르죠. 그리고 30년을 이렇게 함께 생활하면서 살다 보니 이런 얘기를 자주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 이렇게 좋은데, 함께 사는 마을을 만들어서 연습하고, 공연해 보자!” 대학교 동아리 때부터 그런 얘기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 공동체의 씨앗 같은 것이 그때 생긴 것 같습니다.
10년 정도 그렇게 함께 연극을 하다 보니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연습실이 있다 보니 없는 돈에 시끄럽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화장실 문이 배에서 봤던 문과 같다. 선박에 들어가는 자재를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청년 단원과 게스트하우스로 쓰는 컨테이너 주택은 10평, 단원이 거주하는 15평, 20평형 주택은 장방형 단층으로 천장이 높다. 사진 권해솜 기자.
전민규 시골로 가서 고함도 좀 지르고 맘 편하게 공연을 만들면 좋겠더라고요. 돈이 많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사람이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철학이 늘 큰들 안에 있었습니다.
전 감독은 그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단원이 살 곳을 찾겠다며 온 동네 시골이란 시골을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찾아 헤맨 지 10년쯤 됐을 때 2500평 되는 땅을 계약해버렸다.
전민규 중도금까지 냈는데 땅 주인이 땅을 우리한테 넘기기 직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 돈으로 한 2억은 될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사람에 대한 실망감, 배신감이 컸습니다. 그럼 포기를 해야 하는데 포기가 안 됐습니다. 그 일이 있고 2년 후 저온 창고가 비어 있는 200평 땅이 경매로 나와서 샀습니다. 물론 돈은 다 빌렸고요.
저온창고를 연습실로 사용할 수 있을까 싶어서 들어가봤더니, 창고 말고는 달리할 수 없어 연습실을 따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15년을 지냈다.
그러는 동안 극단 큰들은 각 지자체의 문화나 전설, 관광상품을 중심으로 지역에 특화되고 의미 있는 창작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지역에 없던 스토리텔링이 극단 큰들을 통해 생겨나고 문화적 가치를 부여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오작교 아리랑', '남명',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났네', '찔레꽃' 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다시 또 마을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전 감독은 그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단원이 살 곳을 찾겠다며 온 동네 시골이란 시골을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찾아 헤맨 지 10년쯤 됐을 때 2500평 되는 땅을 계약해버렸다.
전민규 중도금까지 냈는데 땅 주인이 땅을 우리한테 넘기기 직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 돈으로 한 2억은 될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사람에 대한 실망감, 배신감이 컸습니다. 그럼 포기를 해야 하는데 포기가 안 됐습니다. 그 일이 있고 2년 후 저온 창고가 비어 있는 200평 땅이 경매로 나와서 샀습니다. 물론 돈은 다 빌렸고요.
저온창고를 연습실로 사용할 수 있을까 싶어서 들어가봤더니, 창고 말고는 달리할 수 없어 연습실을 따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15년을 지냈다.
그러는 동안 극단 큰들은 각 지자체의 문화나 전설, 관광상품을 중심으로 지역에 특화되고 의미 있는 창작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지역에 없던 스토리텔링이 극단 큰들을 통해 생겨나고 문화적 가치를 부여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오작교 아리랑', '남명',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났네', '찔레꽃' 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다시 또 마을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당극 '남명'의 한 장면. 사진 제공 극단 큰들 홈페이지.
어려운 일 버티니 귀인이 나타나다
2010년 부지 2만 평을 구입했다. 2만 평 땅, 말이 쉽지 그 사이에 사기를 당해서 돈도 땅도 잃어도 봤다. 보상이라도 받듯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창조적 마을 만들기 신규마을 조성사업’ 에 응모해 2015년 최종 선정됐다.
서지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주최가 산청군이면, 주관이 산청 큰들 전원마을 정비조합으로 공모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받을 때도 예술단체가 들어와서 살았던 선례가 없어 점수를 높게 받았어요.
2015년 1월 1일자로 사업을 시작해, 2017년 토목 기반공사에 들어갔다.
전민규 토목공사가 끝난 후 집은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했습니다. 제 동생이 거창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동생은 지금까지 형하고 싸워본 일이 없는데, 일을 같이하면 싸울지도 모른다고, 가능하면 공동체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과 일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해줬습니다.
함께 어울려 연극을 만들며 살아왔을 뿐인데 누군가가 큰들을 '공동체'라고 말해줬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듣고보니 공동체가 맞구나 싶었다고. 그래서 공동체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민규 경남 함양군에서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있거나 그렇게 사는 분 30~40명이 1박 2일로 행사를 한다기에 한번 따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은혜공동체 박민수 대표님을 만났어요. 느낌이 오더라고요(웃음).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서울에 가면 만나 뵙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동체를 잘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혜공동체 박민수 대표를 통해서 아뜰리에 건설 기노채 대표를 만나게 됐다.
전민규 서울 가서 기 대표님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사람도 없고 “그냥 해주세요!”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계약 전에 집 설계해주신 김태영, 김현준 건축가도 소개받았습니다.
기 대표 입장에서도 서울 근교도 아니고 산청 골짜기에 마을을 만드는 것은 이윤을 남기는 작업이 아니었다.
2018년 5월 건축설계 및 시공 프로젝트매니저 계약(왼쪽에서 세 번째 서지은 사무국장, 네 번째 전민규 예술감독, 바로 옆이 기노채 아뜰리에건설 대표). 사진 제공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
전민규 큰들 사람들이 사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재미있고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방법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집을 지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어떤 재질로 할지도 정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냥 하자고 했고요.
그렇게 해서 선박용 철재를 이용해 집을 만들게 됐다. 집 안에 들어가 화장실 윗부분에 난 작은 창을 보면 단박에 배 안에서 봤던 것임을 알아챌 수 있다. 바깥 날씨도 춥고 천장도 높아 단열이 걱정됐지만 하룻밤을 지내보니 집은 상당히 따뜻하고 쾌적했다.
전민규 공사는 시작했는데 돈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기 대표님은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셨는데, 그게 선박에 들어가는 철재를 사용한 스틸하우스였습니다. 도시가 아니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착착 6개월 동안 서른한 개의 집을 지었습니다.
전적으로 기 대표와 두 건축가, 건설 현장소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반박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고생하는 게 미안했다.
전민규 건축가분들께서 집을 다 다른 모양으로 만들겠다고 하셔서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열 번 현장에 가면, 그분들은 서울에서 스무 번 내려오시더군요. 너무 수고를 많이 하시니까 일을 적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고도 말씀드리고요.
준공 당시 2019년 11월 전까지 토지 대장이 나와야 이자율이 적은 농가 주택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에, 자금을 더 활용하려면 최대한 공사를 앞당겨야만 했다. 돈이 늘 문제였다. 기 대표가 펀딩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해줬다. 기 대표가 먼저 펀딩을 했다. 후원회원과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집을 짓는 데 쓰이는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줄고 빠르게 돈을 돌려줄 수는 없지만, 극단을 도와준 이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유
지금까지 이들은 마을이란 형태를 가지기 전부터 30여 년 넘게 생활해왔다. 긴 시간을 달려서 함께 살아갈 곳을 만든 것을 보면 공동체가 그토록 좋은 걸까 싶다.
서지은 공동체로 꼭 살아야 하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살아서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살다 보니 같이 먹고 같이 쓰는 게 좋더라고요. 차를 같이 구입해서 필요할 때 쓰는 게 합리적입니다. 생활이 더 좋아지고 행복하다고나 할까요. 내가 아등바등 다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집도 마찬가지고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사니까 안전하고 육아 문제도 해결됩니다. 아이 있는 집은 진짜 최고죠.
특히 단원 중에 아이의 부모 모두가 단원이라 공연으로 집을 비울 때가 종종 있다. 다행히도 매번 보던 이모, 삼촌이 아이 주위에 있으니 상황 또한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서지은 공동체 문화가 시작된 것은 경제적인 부분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옛날에 세월호, 메르스 터졌을 때는 정말 힘들 때 '식빵데이' 이런 걸 했었어요. ‘식비 0원’이요. 같이 있으니까 해결이 가능하더라고요. 공연이 다 끊겨서 같이 부업을 할 때도 있었어요. 같이 떠들고 웃고 위기상황에서 쉽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계속 터득한 것이 하나의 문화로 굳어진 것 같아요.
마을 안의 건담 로봇 앞에 모인 단원들. 사진 제공 큰들 산청 마당극 마을.
마을을 운영하기 위해서 당연히 공연도 모색해야 하지만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내년 초에는 카페도 문을 열 계획이다. 카페 건물 뒤편에 설치한 화덕과 건조기를 이용한 사업도 시도하고 있다.
전민규 예술 활동만 해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요. 일단 창작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20년 전부터 했던 것이 지금 꽃이 피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라면 새로운 세대들이 단원으로 많이 들어와야죠. 단원이 노령화되는 것에 대한 대책은 세대 순환으로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공동체에 매력을 느끼고 즐거워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에 어른세대를 위한 노인시설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전 감독은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다 구상일 뿐, 빌린 돈 먼저 갚아야 한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차근차근히 한다면 10년 후에는 뭔가 시작하고 또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권해솜 데일리임팩트 객원 기자
- 이전글'초고령사회, 우리 동네에서 잘 살아보자' 24.12.18
- 다음글모두 함께 맘 편한 집을 짓고 살아요! 24.12.18